한글박물관을 다녀와서 세종대왕 업적을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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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있는 국립한글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2014년 10월9일 한글날에 맞춰 문을 연 박물관인데 박물관 오픈하고 반년도 안되서 방문하는거라 왠지모를 설레임이 더해지더군요



박물관 주차장입구입니다

주차장이 협소해 보안요원이 차량을 통제하더군요. 순서를 기다려 주차시키고 2층 박물관으로 올라갔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임금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업적이 

백대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훈민정음을 지으심도 

어떤 선인의 설을 이어받으심이 없이

자연으로 이룩하신 것이라.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글귀입니다

정인지는 다른 신하들이 한글 만드는 것을 반대했지만 세종을 도와 함께 한글을 연구한 신하죠

한글박물관 첫입구부터 이글을 읽으니 세종대왕의 업적에 뭔가 모를 숙연함이 느껴지네요



마침 해설사분께서 설명을 시작하고 계시더군요

타이밍 잘 ~ 맞춰 방문한것 같습니다

확실히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니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제가 해설 시간표를 링크해둘테니 참고하셔서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해설사 시간표>




세종대왕의 모습이 정말 이러했을까요?^^

세종대왕은 조선의 세번째 임금인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세째 아들이죠

첫째 양녕, 둘째 효령, 셋째 충녕, 넷째 성녕

바로 충녕이 세종대왕입니다

끈기가 있고 꼼꼼하다고 알려진 세종대왕은 어릴때부터 책벌레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을 전후로한 왕실 계보도입니다

조선시대의 왕족으로 사는건 어땟을까요? 한번 살아보고 싶군요~ ㅎㅎ



한글이 태어난 1443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글의 역사를 쭉 살펴볼수 있게 했습니다



영상이 나오는 곳인데, 조금 화려하게 되어 있다보니 아이들이 신기해하면서 많이 모여들더군요

아이들이 없을 때 찍고 싶었는데 기어이 한명은 나오네요^^



우리말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쉽게 익혀서 편히 쓰는 한글이 아닐까요?



다양한 한글의 역사를 살펴볼수 있도록 해뒀습니다

제가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느낀것중 하나가 보안요원이 많다라는 것인데, 오픈한지 얼마 안된점도 있을테고 이렇게 중요한 문화재가 있어서 그런건가 싶기도 하더군요



전화기 아닙니다~ 한글을 입력할수 있는 최초의 타자기입니다

꼭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에 대한 내용만 있는게 아니고, 이렇게 한글과 관련된 다양한 것들이 전시되어 있답니다. 





국어책입니다. 추억이 떠오르네요 ㅎㅎㅎ



아이들이 놀면서 한글을 접할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특히 한글놀이터가 있는데 이곳은 인기가 많습니다

미리 예약하고 가시는게 좋습니다


<한글놀이터 예약하기>


우리 민족의 자부심인 한글에 대해 많은것을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이 생긴것은 분명 좋은일인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말줄임표현과 같이 다양한 신조어를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아이들에게 한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수 있는 좋은 시간을 줄것 같더군요. 다만,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들은 이해가 좀 어려울것 같습니다. 그래도 몸소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글을 받아들이므로, 아이들에게도 좋은 박물관인건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 포스팅 하는 언어도 한글인데 한글이 과학적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왜 과학적인지, 우리는 한글에 얼마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공부하고 느낄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세종대왕의 업적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한글박물관 방문으로 세종대왕에 대한 궁금증이 더 많아졌거든요^^

세종대왕은 진짜 다양한 업적을 남기셨죠. 한글창제를 비롯해 다양한 업적을 남기셨는데 세종대왕이 남긴 업적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남으로는 대마도 정벌과 북으로는 여진족 정벌

남쪽의 왜구가 백성을 괴롭히니 세종대왕은 1419년 이종무를 시켜 대마도를 정벌합니다. 이후 왜구의 침입이 많이 줄었죠

그리고 북쪽으로는 4군6진을 세워 여진족과 싸웁니다. 이후 여진족의 항복으로 두만강 남쪽땅을 우리땅으로 찾아왔답니다

여기서 잠깐! 4군 6진은 뭘까요?

4군6진에 대해 잠깐 설명드리자면 4군은 여진족을 막기 위해 압록강 상류에 설치한 군으로 여연, 자성, 무창, 우예를 말하고 6진은 두만강 하류에 설치한 진으로 종성, 온성, 회령, 경원, 경흥, 부령을 말합니다

세종대왕이 책벌레만은 아니시랍니다^^


1420년 인재의 요람인 집현전을 설치합니다

집현전의 뜻은 "현명한 이들을 모아둔곳" 이라고 합니다

똑똑한 학자들을 죄다 불러 모아 학문을 연구하게 만든 일종의 연구소인 셈이죠

세종이 세상을 떠난지 얼마 안되 사라진게 안타깝지만 존재하는 동안 많은 것을 연구하고 농사직설과 같은 책도 만든 곳입니다. 


도천법을 실시하여 인재를 중용하여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게 됩니다

도천법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신분을 따지지 않고 나라에서 뽑아 쓰는 제도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장영실이죠

장영실은 동래현에서 종살이를 하던 사람이었으나 도천법에 의해 뽑혀와 많은 발명품을 남깁니다

장영실은 천문관측대인 간의대를 세워 '혼천의'라고 하는 천문시계를 만들고 물시계인 '자격루'와 해시계인 '앙부일구'도 만들게 되죠

그리고 농사를 망치지 않기 위해 빗물의 양을 잴수 있는 측우기도 만듭니다.


도천법을 실시한것만 봐도 세종대왕이 인재를 중요시 여긴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 예가 또 있는데 당시 황희라는 신하가 있습니다

황희는 세종대왕이 세자가 되는 것을 앞장서서 반대한 사람이죠. 하지만 재주가 좋기에 세종대왕은 귀양가 있는 그를 불러 일을 맡기게 되고 신뢰하였다고 합니다


음악에도 관심을 갖고 악기를 만들다

세종대왕은 중국악기로 연주하는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음악에 재능이 많은 박연을 시켜 우리의 악기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게 '편경' 입니다

편경은 음의 높낮이가 다른 돌 16개를 위아래 두 줄에 달고 치는 악기로 구슬처럼 맑은 소리를 낼 뿐 아니라 음이 변하지 않아 오랫동안 음의 표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다양한 책을 펴내다

1421년에는 활자를 통해 책을 더 빨리 인쇄할수 있도록 금속활자인 경자자를 만듭니다

이 활자를 통해 고려의 역사를 올바르게 정리한 '고려사' 를 펴냈죠

그 밖에 농민들이 농사를 잘 지을수 있도록 '농사직설', 우리나라 지리책인 '신찬팔도지리지', 예절에 대해 다룬 '삼강행실도'를 펴냅니다


한글을 창제하다

훈민정음!

지금 글을 쓰는 한글을 만드셨죠. 바로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말을 만드신분이죠^^



지금 광화문에 가면 세종대왕 동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1만원짜리에도 세종대왕의 모습이 담겨있구요.

사실 만원짜리 돈을 보면서 세종대왕의 업적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광화문을 방문해서 세종대왕 동상을 보면 한번쯤 그를 생각하게 되죠

만약 태종이 양녕대군을 왕으로 삼았으면 어땟을까요?

우리는 중국어를 쓰고 있을까요?

그분이 계셨었기에 감사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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